2025년 참가팀


제4회 대전사회복지사 스토리텔링대회


대상 - 보문의 자랑

"보여줄게, 끝없이 새로운 나!"

김동주, 이채원, 문소정 사회복지사

(보문종합사회복지관)


저희가 왜 한 팀으로 스토리텔링 대회에 나오게 되었을까요?
사회초년생, 저연차 사회복지사, 각 팀의 막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 시기에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됩니다.
지역주민과의 관계에서 희노애락을 겪고,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엎어지기도 하고,
이 집단에서 1인분을 잘하고 있는지 고민하며 수많은 충돌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원래의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를 참아내야 할 때입니다.
저희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재밌고 밝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초년생, 저연차 사회복지사, 각 팀의 막내인 우리가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원래의 ‘나’와 새로운 내가 어떻게 충돌했고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색을 담을 수 있는
팔레트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질문,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항상 ‘팔레트 같은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사회복지사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한지 약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저는 자신과 가장 많이 싸우는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사례관리를 하다보면 다양한 대상자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진 수많은 편견과 마주하곤 합니다.


“형의 가족들이 가족사진 찍을 때 저를 불러주지 않아서 굉장히 충격 받았어요. 저는 조카들의 삼촌인데 어떻게 부르지 않을 수가 있죠? 조카들이 저 때문에 정신과를 갔었다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아 달래요. 그런데 제가 힘들면 더 힘들었지, 걔네가 뭐가 힘들었겠어요?”
라는 말을  대상자가 제 앞에서 막 쏟아낼 때,  저는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 날 앞에 앉아있는 대상자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상자의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사회복지사는 팔레트 같은 직업’이라고 늘 말했던 제가 생각보다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대상자가 저에게 쏟아낸 말을 계속 곱씹어보며
‘사회복지사로서의 나는 어떤 자세를 취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대상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무엇이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외로웠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대상자가 외로움을 이해 받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다음 면담 때 조심스럽게 그 대상자에게 “그 날,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라고 하니, “맞아요, 선생님. 전 사실 가족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라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본인의 감정만 앞서던 지난날의 면담과는 달리 대상자가 직접 타인의 입장 및 상황을 이해한다는 내용의 면담이 이어졌습니다. 이때 저는 대상자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제 안에서 내린 결론으로 인해 대상자가 정말 말하고자 했던 진심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편견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제가 팔레트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저는 속도 엄청 좁은 편이고, 이해심도 그리 넓지 않으며 감정적이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굳어진 생각들이 꽤나 많은데, 편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전히 대상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변하지 않은 생각은 사회복지사가 다양한 색을 담을 수 있는 팔레트 같은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제 자신과 싸워나가며 대상자의 진짜 이야기에 귀 기울여봅니다.
그리고 그의 진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비로소 대상자와 연결되었음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도 현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저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일을 ‘잘’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 인정받고 싶습니다. 
일을 ‘잘’ 하려면 어떤 전제가 붙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첫 번째 전제는 통제 가능한 상황과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과 환경을 만들려면 제가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조직화 사업은 주민들이 주도권을 잡을 때 성장하고, 완성됩니다. ‘주민의 주체성을 향상시킨다’라는 성과목표를 세워두고, 주민들에게 “이번 달은 뭘 할까요?”, “이 활동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묻습니다.

행정 절차를 모르는 주민들에겐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가슴은 그 아이디어가 좋은데,
머리는 각종 서류와 제반 작업들로 어지럽혀집니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서 나온 의견이니 시원하게 “좋아요!”를 외칩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눈 대로 쭉 진행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활동 하루 전이든, 몇 시간 전이든 주민들은 변수를 던집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일을 ‘잘’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변수 앞에서 가슴은 화들짝 놀라지만, 머리는 유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호탕한 웃음으로 저를 포장시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지역조직화 사업 3년차인 저는 여전히
‘잘’ 하는 지역조직화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연한 척을 3년 정도 하다 보니 사회복지사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이전보다는 유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일을 ‘잘’ 하고 싶고, 상황과 환경을 통제하고 싶지만 유연함이 더해진 저는 일이 더 재밌어졌고,
쉽게 도전하게 되었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졌습니다.
초보 사회복지사일 때 저는 원래의 나와 사회복지사로서의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원래의 내가 가진 단점을 꽁꽁 숨기고, 장점만 있는 사회복지사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
 ‘나는 진실된 사람인가? 사회복지사로 일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저연차도 중간 연차도 아닌 지금은 원래의 내 모습과 사회복지사로서의 내 모습이
연결되어 조화를 이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2025년 12월, 저는 5년차 사회복지사가 됩니다. 5년차 사회복지사 김동주는 또 무엇을 더하게 될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내어주는 일을 합니다. 
특히 제가 속한 서비스 제공의 업무는 더더욱 그렇고, 자연히 다수의 주민들과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이게 단순히 아름답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란 걸요.
저는 교육문화사업을 하며 큰 행복과 기쁨을 느꼈지만,
그만큼 제 최악의 모습을 보았고, 아주 조금은 사람에 대한 실망도 얻었습니다.

 2025년도 상반기, 구멍가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째선지 입소문이 난 교육문화사업에 너무나도 많은 인원이 몰려들어 수많은 대기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때, 스스로가 대기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용자들은 분개하며 말했습니다. 


“어려서 뭘 잘 모르나본데, 관장님한테 다 말할 거야.” “나 이거 안 해주면 동아리 반 운영 안 해.”
“선생님은 대체 하는 게 뭐에요?” 

아마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저는 거절함으로써 돌아올 이런 말들에 상처 입을 스스로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모든 주민에게 ‘공정함’을 지킨다는 건 때로, 제 의지와 관련 없이 누군가를 거절해야함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터져버린 어느 날, 저는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미움 받는 게 싫습니다. 누구든 미움 받는 건 싫지 않을까요?
특히나 사람이 좋고, 미움 받는 것이 두렵고, 관계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던 저는 더 크게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안에서 마주합니다. 무의식 적으로 누군가를 저주하는, 끝없이 분노하는, 서슬파란 눈빛으로
퉁명스러워진.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스스로가 자원이 됩니다.

저는 제 일을 사랑합니다. 퍼뜩 고개를 든 어느 날에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라는 사람과 ‘사회복지사인 나’를 분리하기로 말입니다.
우선은 상처입어 차가워진 스스로를 너무 책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게 이런 모습이 있음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잘 추슬러 사회복지사로서 주민을 대하기 위한 자아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자아라는 게 제 진짜 모습과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저는 주민과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또 다른 제 모습을 찾아내었고,
이를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서로 연결되었을 뿐인 것이죠.
15세기에 지어진 불경해설서인 ‘석보상절’에는 ‘아름다움’의 ‘아름’을 ‘나’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다울 때 아름답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전에 우리는 나다움을 명확하게 정의 내려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로 살아보니 나는 어떤 말로 명확하게 형용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밝을 때만 아름답지 않고, 긍정적일 때만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사회복지를 하며 마주한 새로운 나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나다운 사회복지를 실천할 것입니다.
모든 현장의 동지들도 나다운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냅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