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사회복지사 인터뷰 - 유호수 사회복지사




A. 2001년 사회복지의 자도 모른 채 사회복지를 시작하였으며, 2007년 천양원으로 이직하여 자립지원전담요원을 거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유호수 사회복지사입니다. “사”자도 모르고 시작한 사회복지가 어느덧 2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A. 2007년 아동양육시설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이라는 직책이 새로 생겨, 천양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13년간 천양원 아동의 자립을 전담하여 장학금 연계, 프로포절, 외부 자원 연계, 자립교육 등을 하여 왔으며, 퇴소생에게도 자립을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과 사례관리를 진행하여 왔습니다.

 2020년부터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한 후 현재 사무국장으로서 시설의 전반적인 업무 및 행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A. 저희 기관은 다양한 사연으로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들이 장기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양육시설입니다. 대부분이 아동양육시설이 그러하듯이 저희 기관 또한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2년에 설립되어 설립 초기에는 전쟁고아를 돌보아 왔으며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아동을 돌보아 왔습니다. IMF 이후에는 가정 해체로 인해 입소한 아이들이 많았다면 현재는 학대 아동들이 입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요즈음은 학대로 인해 입소를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도 달라지다 보니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보육사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관 차량이 노후화됨에 따라 차를 새로 마련하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이 기관차에 타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를 타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선팅이 연해서 밖에서 자동차 안이 다 들여다 보여 아이들이 우르르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다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지원을 받을 경우 차에는 기관명과 지원 기관이 적힐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아이들은 이러한 것이 낙인으로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차량 지원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하였고 모금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때 저희는 약 3년 정도의 모금 기간을 설정하였지만 많은 후원자님의 도움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단 3개월 만에 스타렉스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을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낙인 제거’라는 취지에 적극 동참해 주신 후원자님들이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는 성과였지만 이면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동참해 주신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모금 후 차량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고 선팅도 진하게 하여 아이들이 타고 싶은 차량으로 만들었습니다. 저희 기관은 이처럼 아이들의 인권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이 모여 있는 아동양육시설입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모금을 통해 스타렉스를 마련하자 아이들은 로고가 있는 경차도 바꿔달라고 요청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모금을 하여 모닝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운영위원 한 분이 통 크게 모닝을 기부해 주셔서 모금이 금방 끝이 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A.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학교는 있을 곳이 아니다’라면서 가족과는 상의도 없이 자퇴를 강행하여 가족에게 근심거리를 한가득 안겨준 철부지였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건설업에서 철근을 나르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던 누님이 사회복지를 권하였습니다.


 계룡산 신원사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중증장애인시설이 한 곳 있습니다. 이곳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누님께서 "도 닦는다는 생각으로 가서 일해 보면 어떠니?"라는 제안을 받고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회복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계룡산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러 다닌다고 합니다. 저는 계룡산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사회복지사의 ‘도(道)’를 깨우쳤고 이를 토대로 22년간 사회복지를 하고 있습니다.


A.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갓난아기가 뒤집고, 기고, 일어서고, 뛰어다니고 어느덧 자라 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의 기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어 슬퍼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아 찾아올 때는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아이에서 성인이 되고 자립을 한 후 원장 할아버지의 ‘받은 사랑 풀어내 놓아라’를 실천하기 위해 저도 후원을 하겠다고 찾아올 때는 아동복지를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 자립지원전담요원으로서 입소 아동의 자립을 도맡아 왔으며, 퇴소 시 LH전세주택 지원을 통해 주거를 마련해 왔습니다. LH전세주택은 2년마다 갱신이라 2년이 되기 전에 재계약을 할지 새롭게 주거지를 찾을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퇴소생이 연락이 와서 “LH전세주택을 다른 동네에 알아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난 이제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아닌데? 새로 바뀌신 분 소개해 줄 테니 와서 인사도 하고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동이 하는 말이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아닌가요? 끝까지 책임지세요!”라고 하네요.

 새로 오신 선생님과 어색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저를 신뢰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며, 앞으로도 신뢰를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A.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저에게 사회복지는 이 세 번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복지의 “사”자도 모르던 사람이 ‘맞춤형 적성’을 찾아 22년 동안 사회복지를 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꿈에 바라 마지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사회복지란 거창한 의미보다 ‘맞춤형 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A. 사회복지 현장 실습 지도를 하면서 실습생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지만 이제 사회복지를 배우는 예비사회복지사에게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제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 중증장애인시설에서의 사회복지와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사회복지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클라이언트에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라이언트에게 해결하여야 문제가 있지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과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해결은 요원할 것입니다.


 첫 직장인 장애인시설에 있을 당시 아동이 성장하면서 휠체어 보장구가 맞지 않아 몸이 점점 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안타까워하였지만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마찬가지였으나 어느 순간 아이를 위해 휠체어 보장구를 마련해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뜻이 맞는 직원들을 설득하여 1일 호프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1일 호프를 통해 약 700여만 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거두어 최초 목표였던 맞춤형 보장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느낀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직장인 천양원으로 이직하면서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고 자원을 개발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끊임 없이 도전하고 노력하였지만 매번 프로포절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7전8기의 정신으로 도전하여 8번째 첫 프로포절을 성공하게 되었고 이후 현재까지 수없이 많은 프로포절과 장학금을 연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교육 시간 처음에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면서 생각만 하고 복권을 구입하지 않으면 절대 당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닌 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저의 능력을 개발하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 저의 에너지 원천은 ‘선정’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포절에 제안서를 내는 족족 떨어지다 선정 명단에서 천양원이라는 단어를 처음 확인하였을 때 그 짜릿함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저의 에너지는 ‘선정’, ‘합격’이라는 단어에서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기에 야근의 무게를 이기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A. 시설 입소 아동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못해 본 일 중에 아쉬운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건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나가 보는 것 니다.


 2012년 천양원 하늘소리오케스트라단이 필리핀으로 음악 봉사 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처음 해외를 나가 본 경험은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과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이 경험은 추후 장학금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나 다양한 곳에서 활용이 되었으며,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다녀온 이후에도 단원들은 다른 곳으로의 해외여행을 원하였고, 다녀오지 못한 아이들은 부러움을 담아 해외여행을 원하였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해외라는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A. 교육을 다니다 우연히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맺은 인연이 협회의 운영위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저와 협회의 인연처럼 더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협회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딱히 바라는 점은 없습니다지금까지 대전 지역 사회복지사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 주셨고 그만큼의 큰 성과들도 이룩해 냈습니다. 지금 노력하시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다 보면 더 좋은 앞날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 임직원 및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A. 항상 클라이언트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사인 본인은 좋은 변화보다는 어려움과 힘듦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서로 서로가 동료에게 위로와 힘을 실어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는 사회복지사가 참여하였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의 노력 없었다면 장기근속휴가, 정액급식비, 해외연수 등의 다양한 혜택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에서 사회복지사의 권익을 더욱 대변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들의 더 많은 관심와 참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월 인터뷰는 유호수 사회복지사(천양원)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참여해 주신 유호수 사회복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전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
사회복지사 인터뷰 | 2024년 1월호
- 발행일 : 2024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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